이순신의 제2전(당포(唐浦)) 예기(銳氣)가 바야흐로 성할 때에 비참한 소식이 돌연히 오는도다. 5월 8일에 고성 월명포(月明浦)에 이르러 결진하고 군사를 쉬며, 제장과 도적 파할 계책을 상의하더니, 본도 도사(都事) 최철견(崔銕堅)의 보고가왔거늘 받아본즉, 적병이 경성을 함락하고, 대가가 평양으로 파천하였다 하였는지라. 이순신이 슬픈 눈물을 금치 못하고 노한 담이 찢어지고자 하여, 한 번 기를 놀려 내지(內地)로 들어가 도적을 소탕하고 국치를 쾌히 씻고자 하나 말과 양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수군을 한 번 거두면 삼남(三南)의 울타리를 또 어찌할꼬? 강개하여 피가 끓는 것은 원래 영웅의 본색이나 경망하고 조급한 것은 또한 장수된 자의 크게 경계하는 바이라. 이에 이순신이 비분을 강잉히 억제하고 본영으로 돌아와서, 우수군 절도사이억기(李億祺)에게 이문하여 부산에 있는 도적을 토멸하기로 6월 3일에 함께 모이기를 언약하고, 이날을 기다리더니 언약한 날 전기 수삼일에 적선 10여 척을 노량(露梁)에서 맞는지라, 저희가 많이 모이기 전에 파멸할 경영으로 홀로 전선 23척을 거느리고 노량 바다 가운데로 직충하여 왜선 십수척을 쳐서 파한 후에 사천(泗川) 선창(船滄)으로 향한즉, 7, 8리 되는 산위에서 왜적 400여 명이 홍기와 백기를 어지러이 꽂고 장사진(長蛇陣)법으로 결진하고, 그 가장 높은 봉에는 장막을 특별히 배설하였으며, 언덕 아래에는 왜선 12척이 정박하고, 모든 왜적이 칼을 들고 내려다보며 의기가 양양하더라. 이것을 쏘려한즉 적이 멀어서 쏘는 힘이 미쳐 가기가 어렵고, 나아가 충격코자 한즉 조수가 이에 물러가서 배가 가는 힘이 빠르지 못할 뿐 아니라, 저는 높은 데 있고 우리는 낮은 데 있어 지세가 또한 편리치 못한지라. 해를 돌아보니 서산에 거의 넘어가거늘, 이순신이 이에 제장에게 명하여 가로되, “저 도적의 거만한 태도가 너무 심하니 중류로 유인하여, 나가서 쳐서 파함이 양책(良策)이라.” 하고, 즉시 배를 돌리니 과연 왜적 수백 명이 배를 타고 달려 나오거늘, 즉시 거북선을 놓아 방포하고 돌격하며 죽기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서 적선 수삼 척을 쳐서 침몰하니 저희는 크게 겁을 내어 다 도망하고 그림자도 없더라. 그 이튿날 6월 1일에 육지에 내려가 도적의 종적을 수탐하다가, 2일 진시(辰時)에 당포(唐浦)에 이르러 도적의 대선 9척과 중선·소선 합하여 12척이 나누어 정박하였는데, 그 중 한 큰 배 위에 층루(層樓)가 있으니 높기가 3,4길이나 되고, 외면에는 붉은 장을 드리우고 왜장 한 사람이 엄연히 앞에 섰는지라. 거북선을 그 앞으로 직충하여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그 적장을 활로 쏘아 그가 거꾸러지니, 도적의 군사가 혹 철환을 맞으며, 혹 화살을 받으며 분주히 달아나거늘, 육지에 내려 쫓고자 할 즈음에 또 큰 왜선 20여척이 작은 배 100여 척을 거느리고 거제도에 와서 정박하였다고 척후선이 와서 고하거늘, 재촉하여 해면으로 나갈새, 상거(相距) 5리나 되는데서 조선국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의 기가 날리는 곳에 그림자를 바라보고 일시에 도망하여 숨더라. 여러 번 싸워 연하여 승첩하매, 위엄과 이름은 크게 진동하였으나, 적병은 날로 더하고 우리 군사는 점점 피패해야 일진 장졸이 희허탄식함을 견디지 못하더니, 이날에 당포 외양에 도착하니, 호적소리는 구름에 사무치고, 돛대그림자는 공중에 날리는데, 이는 우수사 이억기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서 언약대로 모임이러라. 군중이 흔열(欣悅)하고 용약(踊躍)하며 이순신이 이억기의 손을 잡고 가로되, “왜적이 창궐하여 국가의 존망이 호흡에 있거늘 어찌 그리 더디 오느뇨?” 하더라. 5일에 안개가 하늘에 가득하여 지척을 불변이러니, 늦은 후에 점점 걷히거늘 이억기로 더불어 도망한 도적을 쫓아 치기로 상의하고, 돛을 달고 바다로 나간즉, 거제에 사는 백성 7,8인이 작은 배를 타고 와서 맞으며 가로되, “민(民)들이 장군을 오래 기다렸노니, 장군이 아니면, 백성들의 부모가 도적의 칼에 어육이 되었을 것이요, 백성들의 처자가 도적의 철환에 참혹한 귀신이 되어 전라 일도가 크게 한 피비린내의 천지가 되었을 것이거늘 다행히 하늘이 장군을 내려 보내셨도다. 장군이여, 장군이여! 민들을 나은 자는 부모이거니와 민들을 살린 자는 장군이니 장군도 또한 우리 부모이시니이다.” 하며 이르되, “당포에서 쫓겨난 도적이 당항포(唐項浦)에 가만히 정박하여 있으니, 장군은 일찍 신통하신 위엄을 분발하시어 민들을 살리소서!” 하거늘, 인하여 당항포 형세를 물으니, “멀기는 십여 리쯤 되고, 넓기는 배를 용납할 만하다.” 하는지라. 먼저 두서넛 척후선을 보내어 지리를 살피게 할새, 엄밀히 신칙하여 가로되, “만일 도적이 쫓아오거든 거짓 쫓겨서 유인하여 나오게 하라.” 하고, 대대(大隊)가 그 뒤를 따라가더니 척후선이 바다 어구에 겨우 나가며 신기포를 놓아 변(變)을 보하거늘, 전선 4척은 포구에 숨어있게 하고 대대가 옹위하여 들어간즉, 적병이 강을 끼고 양편 언덕 20여 리 되는 산록에 있는지라. 지형을 살펴본즉 심히 협착하지 아니하여 전선을 용납할만 하더라. 모든 배가 차례로 들어가서 소소강(召所江) 서편 언덕에 이르니, 큰 검은 왜선 8척과 중선 4척과 소선 13척이 정박하였는데, 그 중 가장 큰 뱃머리에 삼층으로 널집을 짓고, 분벽단청이 절에 법당과 흡사하며, 집 아래는 검은 물을 들인 비단으로 휘장을 드리우고, 그 장에 흰 꽃으로 문채를 크게 그렸는데, 휘장 안에는 무수한 왜인이 벌려 섰고, 조금 있다가 또 큰 왜선 수척이 내포(內浦)에서 나와서 한 곳에 모이니, 각선에 모두 흑기를 꽂았는데, 기마다 ‘남무묘법련화경(南無妙法蓮花經)’ 7자를 썼더라. 우리 배를 보더니 다투어 총을 놓거늘 각선이 에워싸고, 거북선으로 앞서서 충돌하여 이윽히 접전하여 승부를 미분한지라. 이순신이 가로되, “만일 저희가 세력이 소진하여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오르면 몰수히 잡기가 어려우리니, 우리는 거짓 패하여 군사를 물러나는 모양을 보이면 저희 필연배를 옮겨 따르리니, 틈을 타서 좌우 협공하면 가히 온전히 이기리라.” 하고, 일면을 던져버리고 군사를 물러나니, 과연 적선이 그곳으로 향하여 나오는지라. 각선을 감독하여 사면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둘러싸고, 거북선으로 그 층각 있는 배에 직충하여 총을 놓으니, 층각 위에 높이 앉았던 적장이 ‘애고!’소리 한마디에 물에 떨어지며, 남은 배들은 다 창황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그 후에 항복한 왜인에게 들은즉 이번 싸움에 죽은 자는 곧 수길(秀吉)의 사랑하는 장수 우시축전수(羽柴筑前守)(하시바 치구젠 노카미)라 하더라. 싸움을 더욱 독려하여 왜선을 모조리 분멸하고, 한 배를 짐짓 놓아 돌아보내니, 죽이면 죽이고 살리면 살리는 것이 무비 장군의 신통한 위엄이러라. 6일 새벽에 방답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을 불러 가로되, “어제 짐짓 놓아 보낸 배에 남은 도적이 당항포에서 산으로 올라간 도적과 합세하여 새벽에 가만히 범하리니, 그대는 이를 쳐서 모두 잡아라!” 이첨사가 간 지 얼마 못되어 급히 보고가 왔는데, 과연 겨우 바다 어구에 나간즉, 왜인 수백 명이 한 배를 타고 그 중에 왜장은 나이 24,25세 가량이오, 용모가 건위(健偉)하며, 복장을 화려히 하고, 칼을 짚고 홀로 서서 무리를 지휘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거늘, 이첨사가 여러 번 활을 쏘아 맞히니, 10여 차 살을 맞은 후에야, 비로소 한 소리를 지르고 물에 떨어지며, 그 남은 무리는 모두 물에 빠져 죽으니, 이순신(李舜臣)의 대적을 헤아림이 대개 이러하더라. 그 배를 수탐하여 본즉 배 안에 특별히 방을 꾸미고, 방안에 장막은 극진히 사치하게 하였으며, 한 작은 궤가 있거늘, 취하여 보니 그 배에 있던 왜장의 군사를 분배한 기록책인데, 합이 3천4십 명에 각각 피를 이름 밑에 찍어서 맹세하였더라. 이날에 비가 쏟아지고 구름이 어두워서 바닷길을 분별할 수 없음으로, 당항포 앞바다에 나가서 결진하여 군사를 쉬게 하고, 그 이튿날 영등포 앞바다에 이르러, 패하여 도망하던 왜선 7척을 만나서 모조리 침몰시키니, 이후부터는 적병이 이순신을 만나면 크게 두려워서 바라보기만 하면, 문득 달아나서 험한 곳을 지키고 나오지 아니하더라. 이때에 우리나라에서 옛적 진나라 법을 답습하여, 싸움에 대적의 군사를 죽여, 머리를 베어온 수가 많고 적은 것으로 그 공로의 대소를 분별하더니, 이순신이 가로되, “그 머리를 베는 시간에 활을 한 번이라도 더 쏘는 것이 가하다.” 하여 그 수급의 다소로 공을 분별하는 법을 개정하니라. 이번 싸움에 왜선이 패하여 침몰된 자가 82척이오. 주검이 바다를 덮었는데, 우리 군사는 죽은 자가 18인이요, 상한 자가 30인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