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8월 3일에 한산도에서 패한 소식이 들리매, 조정과 백성이 진동하는지라. 주상이 급히 제신을 명초(命招)하사 계교를 물으신데, 다 황황망조하여 감히 대답하는 자가 없더라.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이 조용히 아뢰오되, “이는 원균의 죄악이오니, 오늘날 선후지책은 이순신으로 통제사를 재임명하여야 가하니이다.” 주상이 이 말을 옳게 여기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충청·전라·경상 삼도통제사를 내리시고, 조서를 내려 가로되, “오호라! 국가에 의지하여 울타리를 삼는 자는 다만 수군에 있거늘, 이에 하늘이 재앙을 뉘우치지 아니하여, 도적이 다시 성하매 삼도 수군으로 하여금 한 번 싸워 패하여 눈썹을 태우는 급함이 조석에 있으니, 목하에 계책은 흩어져 도망한 자를 불러모으고 군함을 수합하여 급히 요해처를 웅거하고, 엄연히 대본영(大本營)을 만들어야 도망한 무리가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요, 한창 성한 도적을 저으기 막을 터인데, 이 책임을 당할 자는 오래 위엄과 은혜, 지혜와 재간으로 평소 안팎에서 인민이 복종하던 자가 아니면 불가하니, 오직 경은 성명이 일찍이 병사를 처음 하던 날에 나타났으며, 공업(功業)은 임진년 크게 승첩한 후에 나타나서, 변방 군사가 의지하기를 만리장성과 같이 견고하게 알더니, 이에 경의 벼슬을 갈고, 대죄 거행하라는 전례를 시행하였더니, 사람이 획책을 잘 하지 못하여, 오늘날 패하는 욕을 당하였으니 무슨 말을 하리요? 이제 경을 거상하는 데서 일어나게 하며, 백의에서 특별히 택차하여, 충청·전라·경상 삼도 수군통제사를 주노니, 경은 임소에 이르는 날에 먼저 이산한 민졸을 불러 위로하고, 바다 영문을 지어서 적세를 막을지어다! 경이 나라를 위하여 몸을 잊음과 기틀을 보아 진퇴하는 것은 이미 그 능함을 시험하였으니, 나는 어찌 여러 말로 고하리요?”하오셨더라. 8월 19일에 이순신이 제장을 불러 함께 조칙을 읽고, 숙배(肅拜)한 후에 회령포(會寧浦)에 이르니, 흩어졌던 군사들이 순신의 통제사 다시 임명된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모이니 군사 120인과 전선 10척을 얻었더라. 전라우수사 김억추(金億秋)를 명하여 병선을 수습하며, 제장을 분부하여 거북선을 꾸미어, 군세(軍勢)를 돕게 하고 언약하여 가로되,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한 번 죽는 것을 어찌 아끼리요.” 하니, 제장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더라. 24일에 난포(蘭浦)로 나아갔더니, 28일에 적선 8척이 가만히 와서, 출기불의에 엄습코자 하거늘, 순신이 호각을 불고, 기를 두르며 적선을 충돌하자도적이 물러가더니, 9월 7일에 적선 13척이 또 오다가 공이 맞아 치니 곧 달아나고, 그날 밤 이경쯤 되어 또 와서 방포하거늘, 공이 군졸로 하여금 응포하매 또 패하여 달아나니, 이는 도적이 이순신의 군사가 적음을 알고업수이 여겨 이로써 시험함이더라. 때는 정히 늦은 가을이라. 바다 하늘이 심히 찬데, 사졸이 옷이 없어 정히 추위를 견디지 못하더니, 마침 피난하는 배가 바다 언덕에 와서 댄 자가 몇백 척이라. 순신이 물어 가로되, “도적의 배가 바다를 덮었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곳에 머물러 있느뇨?” 모두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는 사또를 믿고 이에서 머무노이다.” 순신이 가로되, “너희 만일 나의 말을 들으면 살리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다 죽으리라.” 하니 모두 가로되, “사또의 명대로 하오리이다.” 순신이 가로되, “장졸이 모두 주리고, 추움을 견디지 못하니, 어찌 도적을 방어할 도리가 있으리요. 너희 만일 남은 의복과 양식으로써 군사를 구원하면, 이 도적을 가히 멸하고 너희도 가히 죽기를 면하리라.”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일제히 양식과 의복을 거두어 바치거늘, 이에 양식을 각선에 나누어 실으니 군졸이 그제야 기동하더라. 그러나 도적의 군사는 많고 우리 군사는 적음으로, 제장이 사람마다 가로되, “육지로 오름이 가하다.” 하거늘 순신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또 조정에서도 명하기를, “수군이 심히 적어 도적을 대적키 어려우니 육지에서 방어하라!” 하였거늘, 순신이 또 장계하여 가로되, “임진년으로부터 지금까지 5,6년간에 도적이 충청·전라 양도를 직충치 못함은 수군이 그 길을 막음이라. 이제 신이 전선 12척이 있으니, 죽기로써 싸우면 오히려 가히 할 만하겠거늘, 이제 만일 수군을 전폐하면 도적이 필연 전라도를 지나 한강에 이르리니, 이제 전선이 비록 적으나 신이 죽지 아니하면 도적이 우리를 가벼이 보지 못하리이다.” 하고, 우영(右營) 앞바다에 나가서 제장을 불러 모으고, 약속을 정하여 가로되, “한 사람이 길을 막으면 족히 천 사람을 두렵게 하나니, 이제 우리가 진친 곳이 이러하니 제장들은 근심치 말고 다만 죽기를 두려워 아니하는 마음만 항상 가지고 있으면 싸워 이기리라.”하더라. 16일 이른 아침에 도적이 하늘을 가리우고 바다를 덮어 명량(鳴梁)으로 쫓아와서, 우리 진(陣)을 향하거늘, 순신이 제장을 거느리고 나가 방어할새, 적선 30여 척이 맹렬히 앞으로 나아오며 우리 배를 에워싸고자 하거늘, 순신이 노를 재촉하여 앞으로 충돌하며, 각 군사를 재촉하여 총을 어지러이 놓으니, 도적의 군사가 곧 범하지 못하고 잠깐 나아오다가 도로 퇴하는 모양이러라. 이때에 나는 적고 도적은 많으매 대적키 어려울 뿐 아니라 도적의 배가 우리 배를 10여 겹이나 에워싸고 장사진법으로 좌우협공하니, 그 형세가 심히 불측한지라. 각선 장졸이 서로 돌아보며 실색하거늘, 순신이 웃고 가로되, “저 도적이 비록 만 척의 배를 거느리고 올지라도 모두 우리에게 사로잡히는 바가 되리니, 망녕되이 동하지 말고 총과 활을 쓰는데 주의하여 진력하라!” 하니, 이 두어 마디 말이 얼마나 쾌활하며, 얼마나 담대하뇨? 장졸이 사람마다 감동하여 뛰며 기를 두르매, 모든 배가 다투어 나아오더라. 바다 가운데는 두 나라 군사의 싸우는 소리요, 산 위에는 싸움을 구경하는 원근에 인민이라. 이 통제사만 다시 일어나면 왜적의 원수를 쾌히 보복하리라 하여 남부여대하고, 혹 백 리 혹 천 리에서 모여와 높은 산 위에서 이통제사의 싸움을 구경하더라. 우리 배 12척이 해면에 표양하는데, 홀연 수천 척 되는 적선이 일시에 에워싸서 검은 구름과 어지러운 안개가 합하는 듯하는 중에, 우리 배는 어느곳에 가 묻혀 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공중에 칼 빛만 번뜩이며 대포 소리만 진동하는지라. 싸움을 보는 사람들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에 온 것은 이통제사를 믿음이러니, 이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련하다! 우리는 누구로 더불어 함께 살리요.” 하고, 곡성이 하늘에 사무치더니, 홀연 산악이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며, 적선 30여 척이 깨어지고 ‘조선삼도수군통제사’라 크게 쓴 깃발이 중천에 펄펄 날리며, 그 뒤로 우리 전선이 노는 용같이 돌아나오니, 이것이 하늘인가, 귀신인가, 이 어디로서 오는 소식인가? 싸움을 보던 일체 사람들이 모두 손을 이마 위에 높이 들고 만세를 다투어 부르더라. 이에 수천 척 되는 도적의 배가 혹 깨어지고, 혹 사로잡히고, 혹 도망하는데, 우리 배 12척은 왕래하며, 분주히 좌우충돌하여, 위엄을 빛내니, 장하도다! 넓고 넓은 바다 물결 위에서 왜적을 사냥꾼이 노루를 쫓듯 하는 신기한 장관을 나타내었더라. 이번 싸움에 우리 배가 물 가운데 제일 요지를 먼저 점령하였을 뿐 아니라, 교전하여 겨우 일합에 도적의 선봉선을 깨치고, 그 무쌍한 놀랜 장수 마다시(馬多時)(마다시요)를 잡아 베매, 도적의 기운이 먼저 꺾인지라. 그러므로 12척 적은 배에 약한 군사로 수천 척의 적선을 초멸함이러라. 이충무공이 일찍 사람을 대하여 가로되, “나의 명량에서 한 번 승첩함은 새로 모집한 조련 없는 군사 몇 백 명과 불과 10여 척 되는 튼튼치 못한 배로 수천 척의 적선과 수만 명의 적병을 이기었으니, 이는 하늘의 도우심이요, 국가의 흥복이라. 우연히 꿈속에 생각하여도 한 번 상쾌함을 말지 아니하노라.” 하더라. 17일에 배를 이끌고 외양섬에 나갈새, 피란한 인민들이 열성으로 고기와 술을 가지고 와서 드리더라. 이때에 도적이 정히 멀리 도망한지라. 이에 이순신이 날마다 제장을 보내어 각처로 순행하며, 유리한 백성을 타이르고 흩어진 군사를 불러 모으니, 두어 달 안에 장사들이 구름 모이듯 하여, 군사의 형세가 크게 떨치더라. 비록 그러나 이통제사의 신기묘산으로 능히 한 나라는 보전하여도 그 집은 능히 보전치 못하며, 전국 백성은 능히 구원하여도 그 아들을 능히 구원치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저 왜장 수가(秀家)와 행장(行長)과 청정 등이 원균으로 하여금 이통제사를 모해하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이통제사가 다시 살아서 구구한 12척 쇠잔한 배로 수천 척 왜선에 수만 저 왜장 수가(秀家)와 행장(行長)과 청정 등이 원균으로 하여금 이통제사를 모해하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이통제사가 다시 살아서 구구한 12척 쇠잔한 배로 수천 척 왜선에 수만 명 왜병을 일조에 초멸하니, 저희 분하고 부끄럽고 절통함을 이기지 못하나 이통제사의 신통한 눈이 비취는 곳에 보복할 땅이 없는 고로, 명량에서 패한 후로 곧 그날로 날랜 기병을 보내어, 이통제사의 본집 있는 아산(牙山) 금성촌(錦城村)에 가서 한 마을을 분탕하고 사람을 만나는 대로 살해할새, 이통제사는 셋째 아들이면(李?)이 10여 세의 아이로 집에 있어서 말 달리고 활쏘기를 공부하다가, 왜병이 들어옴을 보고 즉시 작은 조총을 들어 적병 3명을 쏘아 죽이고 왕래 충돌하더니, 슬프다! 한 어린 범이 여러 늙은 이리가 다투어 무는 것을 어찌 감당하리요? 필경 해를 입었더라. 담략이 크고 말 타고 활쏘기를 잘하여, 장래 자기를 계승하고, 국가의 만리장성(長城)이 되리라 믿던 제일 사랑하는 아들의 죽은 소식을 들으니, 천리 밖에 항상 잘 있는 기별을 날로 기다리던 그 부친의 심사가 과연 어떠할까? 부음을 듣고 통곡하여 가로되, “나의 어린 아들이여,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운이 여느사람에 뛰어남으로 하늘이 세상에 머물지 아니하심인가. 내가 세상에 있어서 뉘를 의지할꼬.” 하며, 하룻밤 지내기를 1년과 같이 하니, 가련하다! 이는 그 모친의 상사를 당한 후에 제일 애통하는 눈물이러라. 제14장 이순신의 통제사 재임과 명량(鳴梁)에서 대승첩 8월 3일에 한산도에서 패한 소식이 들리매, 조정과 백성이 진동하는지라. 주상이 급히 제신을 명초(命招)하사 계교를 물으신데, 다 황황망조하여 감히 대답하는 자가 없더라.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이 조용히 아뢰오되, “이는 원균의 죄악이오니, 오늘날 선후지책은 이순신으로 통제사를 재임명하여야 가하니이다.” 주상이 이 말을 옳게 여기사, 이순신으로 하여금 충청·전라·경상 삼도통제사를 내리시고, 조서를 내려 가로되, “오호라! 국가에 의지하여 울타리를 삼는 자는 다만 수군에 있거늘, 이에 하늘이 재앙을 뉘우치지 아니하여, 도적이 다시 성하매 삼도 수군으로 하여금 한 번 싸워 패하여 눈썹을 태우는 급함이 조석에 있으니, 목하에 계책은 흩어져 도망한 자를 불러모으고 군함을 수합하여 급히 요해처를 웅거하고, 엄연히 대본영(大本營)을 만들어야 도망한 무리가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요, 한창 성한 도적을 저으기 막을 터인데, 이 책임을 당할 자는 오래 위엄과 은혜, 지혜와 재간으로 평소 안팎에서 인민이 복종하던 자가 아니면 불가하니, 오직 경은 성명이 일찍이 병사를 처음 하던 날에 나타났으며, 공업(功業)은 임진년 크게 승첩한 후에 나타나서, 변방 군사가 의지하기를 만리장성과 같이 견고하게 알더니, 이에 경의 벼슬을 갈고, 대죄 거행하라는 전례를 시행하였더니, 사람이 획책을 잘 하지 못하여, 오늘날 패하는 욕을 당하였으니 무슨 말을 하리요? 이제 경을 거상하는 데서 일어나게 하며, 백의에서 특별히 택차하여, 충청·전라·경상 삼도 수군통제사를 주노니, 경은 임소에 이르는 날에 먼저 이산한 민졸을 불러 위로하고, 바다 영문을 지어서 적세를 막을지어다! 경이 나라를 위하여 몸을 잊음과 기틀을 보아 진퇴하는 것은 이미 그 능함을 시험하였으니, 나는 어찌 여러 말로 고하리요?”하오셨더라. 8월 19일에 이순신이 제장을 불러 함께 조칙을 읽고, 숙배(肅拜)한 후에 회령포(會寧浦)에 이르니, 흩어졌던 군사들이 순신의 통제사 다시 임명된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모이니 군사 120인과 전선 10척을 얻었더라. 전라우수사 김억추(金億秋)를 명하여 병선을 수습하며, 제장을 분부하여 거북선을 꾸미어, 군세(軍勢)를 돕게 하고 언약하여 가로되,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한 번 죽는 것을 어찌 아끼리요.” 하니, 제장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더라. 24일에 난포(蘭浦)로 나아갔더니, 28일에 적선 8척이 가만히 와서, 출기불의에 엄습코자 하거늘, 순신이 호각을 불고, 기를 두르며 적선을 충돌하자도적이 물러가더니, 9월 7일에 적선 13척이 또 오다가 공이 맞아 치니 곧 달아나고, 그날 밤 이경쯤 되어 또 와서 방포하거늘, 공이 군졸로 하여금 응포하매 또 패하여 달아나니, 이는 도적이 이순신의 군사가 적음을 알고업수이 여겨 이로써 시험함이더라. 때는 정히 늦은 가을이라. 바다 하늘이 심히 찬데, 사졸이 옷이 없어 정히 추위를 견디지 못하더니, 마침 피난하는 배가 바다 언덕에 와서 댄 자가 몇백 척이라. 순신이 물어 가로되, “도적의 배가 바다를 덮었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곳에 머물러 있느뇨?” 모두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는 사또를 믿고 이에서 머무노이다.” 순신이 가로되, “너희 만일 나의 말을 들으면 살리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다 죽으리라.” 하니 모두 가로되, “사또의 명대로 하오리이다.” 순신이 가로되, “장졸이 모두 주리고, 추움을 견디지 못하니, 어찌 도적을 방어할 도리가 있으리요. 너희 만일 남은 의복과 양식으로써 군사를 구원하면, 이 도적을 가히 멸하고 너희도 가히 죽기를 면하리라.”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일제히 양식과 의복을 거두어 바치거늘, 이에 양식을 각선에 나누어 실으니 군졸이 그제야 기동하더라. 그러나 도적의 군사는 많고 우리 군사는 적음으로, 제장이 사람마다 가로되, “육지로 오름이 가하다.” 하거늘 순신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또 조정에서도 명하기를, “수군이 심히 적어 도적을 대적키 어려우니 육지에서 방어하라!” 하였거늘, 순신이 또 장계하여 가로되, “임진년으로부터 지금까지 5,6년간에 도적이 충청·전라 양도를 직충치 못함은 수군이 그 길을 막음이라. 이제 신이 전선 12척이 있으니, 죽기로써 싸우면 오히려 가히 할 만하겠거늘, 이제 만일 수군을 전폐하면 도적이 필연 전라도를 지나 한강에 이르리니, 이제 전선이 비록 적으나 신이 죽지 아니하면 도적이 우리를 가벼이 보지 못하리이다.” 하고, 우영(右營) 앞바다에 나가서 제장을 불러 모으고, 약속을 정하여 가로되, “한 사람이 길을 막으면 족히 천 사람을 두렵게 하나니, 이제 우리가 진친 곳이 이러하니 제장들은 근심치 말고 다만 죽기를 두려워 아니하는 마음만 항상 가지고 있으면 싸워 이기리라.”하더라. 16일 이른 아침에 도적이 하늘을 가리우고 바다를 덮어 명량(鳴梁)으로 쫓아와서, 우리 진(陣)을 향하거늘, 순신이 제장을 거느리고 나가 방어할새, 적선 30여 척이 맹렬히 앞으로 나아오며 우리 배를 에워싸고자 하거늘, 순신이 노를 재촉하여 앞으로 충돌하며, 각 군사를 재촉하여 총을 어지러이 놓으니, 도적의 군사가 곧 범하지 못하고 잠깐 나아오다가 도로 퇴하는 모양이러라. 이때에 나는 적고 도적은 많으매 대적키 어려울 뿐 아니라 도적의 배가 우리 배를 10여 겹이나 에워싸고 장사진법으로 좌우협공하니, 그 형세가 심히 불측한지라. 각선 장졸이 서로 돌아보며 실색하거늘, 순신이 웃고 가로되, “저 도적이 비록 만 척의 배를 거느리고 올지라도 모두 우리에게 사로잡히는 바가 되리니, 망녕되이 동하지 말고 총과 활을 쓰는데 주의하여 진력하라!” 하니, 이 두어 마디 말이 얼마나 쾌활하며, 얼마나 담대하뇨? 장졸이 사람마다 감동하여 뛰며 기를 두르매, 모든 배가 다투어 나아오더라. 바다 가운데는 두 나라 군사의 싸우는 소리요, 산 위에는 싸움을 구경하는 원근에 인민이라. 이 통제사만 다시 일어나면 왜적의 원수를 쾌히 보복하리라 하여 남부여대하고, 혹 백 리 혹 천 리에서 모여와 높은 산 위에서 이통제사의 싸움을 구경하더라. 우리 배 12척이 해면에 표양하는데, 홀연 수천 척 되는 적선이 일시에 에워싸서 검은 구름과 어지러운 안개가 합하는 듯하는 중에, 우리 배는 어느곳에 가 묻혀 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공중에 칼 빛만 번뜩이며 대포 소리만 진동하는지라. 싸움을 보는 사람들이 서로 붙들고 통곡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에 온 것은 이통제사를 믿음이러니, 이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련하다! 우리는 누구로 더불어 함께 살리요.” 하고, 곡성이 하늘에 사무치더니, 홀연 산악이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며, 적선 30여 척이 깨어지고 ‘조선삼도수군통제사’라 크게 쓴 깃발이 중천에 펄펄 날리며, 그 뒤로 우리 전선이 노는 용같이 돌아나오니, 이것이 하늘인가, 귀신인가, 이 어디로서 오는 소식인가? 싸움을 보던 일체 사람들이 모두 손을 이마 위에 높이 들고 만세를 다투어 부르더라. 이에 수천 척 되는 도적의 배가 혹 깨어지고, 혹 사로잡히고, 혹 도망하는데, 우리 배 12척은 왕래하며, 분주히 좌우충돌하여, 위엄을 빛내니, 장하도다! 넓고 넓은 바다 물결 위에서 왜적을 사냥꾼이 노루를 쫓듯 하는 신기한 장관을 나타내었더라. 이번 싸움에 우리 배가 물 가운데 제일 요지를 먼저 점령하였을 뿐 아니라, 교전하여 겨우 일합에 도적의 선봉선을 깨치고, 그 무쌍한 놀랜 장수 마다시(馬多時)(마다시요)를 잡아 베매, 도적의 기운이 먼저 꺾인지라. 그러므로 12척 적은 배에 약한 군사로 수천 척의 적선을 초멸함이러라. 이충무공이 일찍 사람을 대하여 가로되, “나의 명량에서 한 번 승첩함은 새로 모집한 조련 없는 군사 몇 백 명과 불과 10여 척 되는 튼튼치 못한 배로 수천 척의 적선과 수만 명의 적병을 이기었으니, 이는 하늘의 도우심이요, 국가의 흥복이라. 우연히 꿈속에 생각하여도 한 번 상쾌함을 말지 아니하노라.” 하더라. 17일에 배를 이끌고 외양섬에 나갈새, 피란한 인민들이 열성으로 고기와 술을 가지고 와서 드리더라. 이때에 도적이 정히 멀리 도망한지라. 이에 이순신이 날마다 제장을 보내어 각처로 순행하며, 유리한 백성을 타이르고 흩어진 군사를 불러 모으니, 두어 달 안에 장사들이 구름 모이듯 하여, 군사의 형세가 크게 떨치더라. 비록 그러나 이통제사의 신기묘산으로 능히 한 나라는 보전하여도 그 집은 능히 보전치 못하며, 전국 백성은 능히 구원하여도 그 아들을 능히 구원치 못하였으니 애석하도다. 저 왜장 수가(秀家)와 행장(行長)과 청정 등이 원균으로 하여금 이통제사를 모해하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이통제사가 다시 살아서 구구한 12척 쇠잔한 배로 수천 척 왜선에 수만 명 왜병을 일조에 초멸하니, 저희 분하고 부끄럽고 절통함을 이기지 못하나 이통제사의 신통한 눈이 비취는 곳에 보복할 땅이 없는 고로, 명량에서 패한 후로 곧 그날로 날랜 기병을 보내어, 이통제사의 본집 있는 아산(牙山) 금성촌(錦城村)에 가서 한 마을을 분탕하고 사람을 만나는 대로 살해할새, 이통제사는 셋째 아들이면(李?)이 10여 세의 아이로 집에 있어서 말 달리고 활쏘기를 공부하다가, 왜병이 들어옴을 보고 즉시 작은 조총을 들어 적병 3명을 쏘아 죽이고 왕래 충돌하더니, 슬프다! 한 어린 범이 여러 늙은 이리가 다투어 무는 것을 어찌 감당하리요? 필경 해를 입었더라. 담략이 크고 말 타고 활쏘기를 잘하여, 장래 자기를 계승하고, 국가의 만리장성(長城)이 되리라 믿던 제일 사랑하는 아들의 죽은 소식을 들으니, 천리 밖에 항상 잘 있는 기별을 날로 기다리던 그 부친의 심사가 과연 어떠할까? 부음을 듣고 통곡하여 가로되, “나의 어린 아들이여,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운이 여느사람에 뛰어남으로 하늘이 세상에 머물지 아니하심인가. 내가 세상에 있어서 뉘를 의지할꼬.” 하며, 하룻밤 지내기를 1년과 같이 하니, 가련하다! 이는 그 모친의 상사를 당한 후에 제일 애통하는 눈물이러라.
명량대첩